상세내용
정립 문적은 옥천 출신의 정립 선생이 남긴 고문서 4점으로, 고암기(顧菴記, 1586∼1592년, 일기)와 개명첩(改名帖), 교첩, 교지이다.
고암기는 1586년부터 1592년까지 정립 선생의 일기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의 기록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수의 충청관련 지역명 및 역사인물 이름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충청지역의 생활 및 정치, 전란과 관련된 풍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1582년(선조 15)에 예문관에 내린 정립 개명첩은 진사 정방의 이름을 정립으로 바꾸는 허가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개명첩이라는 관문서가 목판으로 제작된 사례는 매우 드물어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정립을 성관균 전적(成均館 典籍) 으로 임명한다는 교첩과 진해현감(鎭海縣監)으로 임명하는 교지 또한, 관문서가 갖추어야 할 관인 및 수결 등이 상세히 남아있다.
정립 문적은 개인의 생활사 뿐만 아니라 당시의 지역문화 및 정치상황 등 포괄적이고 다양한 사회현상과 변화 등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암기는 1586년부터 1592년까지 정립 선생의 일기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의 기록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수의 충청관련 지역명 및 역사인물 이름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충청지역의 생활 및 정치, 전란과 관련된 풍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1582년(선조 15)에 예문관에 내린 정립 개명첩은 진사 정방의 이름을 정립으로 바꾸는 허가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개명첩이라는 관문서가 목판으로 제작된 사례는 매우 드물어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정립을 성관균 전적(成均館 典籍) 으로 임명한다는 교첩과 진해현감(鎭海縣監)으로 임명하는 교지 또한, 관문서가 갖추어야 할 관인 및 수결 등이 상세히 남아있다.
정립 문적은 개인의 생활사 뿐만 아니라 당시의 지역문화 및 정치상황 등 포괄적이고 다양한 사회현상과 변화 등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