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내용
옥천 백운리 고가는 망와의 기록으로 보아 1842년(道光22年 癸卯 日)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건립 당시 종2품의 정참판이 기거했다하여 참판집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전면에는 一字形의 사랑채가 배치되고 후면에 一자형의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솟을삼문에 면한 막돌담장으로 둘러싸고 안채는 사주문에 면해서 담장으로 둘러싸고 있다. 하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길에 면하여 행랑채 자리로 보이는 터가 마련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목조기와집이다. 평면구성은 왼쪽부터 대청, 윗사랑방, 아랫사랑방, 부엌, 건넌방으로 구성되고, 대청에서 아랫사랑방까지 전퇴를 마련하고 있다. 건물구조는 화강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방주(方柱)를 세운 납도리이다. 가구형식은 오량가(五樑家)이다. 대청의 천정은 연등천장이며 방은 반자를 하였고, 마루는 자귀질하여 만든 우물마루로 고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툇마루 청판은 오래된 고식기법으로 조선시대의 치목기법(治木技法)이 역력히 나타나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아울러, 건축 가구법이 축조 당시의 목조기술을 파악할 수 있어 건축 연구자료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
전체적으로 전면에는 一字形의 사랑채가 배치되고 후면에 一자형의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솟을삼문에 면한 막돌담장으로 둘러싸고 안채는 사주문에 면해서 담장으로 둘러싸고 있다. 하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길에 면하여 행랑채 자리로 보이는 터가 마련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목조기와집이다. 평면구성은 왼쪽부터 대청, 윗사랑방, 아랫사랑방, 부엌, 건넌방으로 구성되고, 대청에서 아랫사랑방까지 전퇴를 마련하고 있다. 건물구조는 화강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방주(方柱)를 세운 납도리이다. 가구형식은 오량가(五樑家)이다. 대청의 천정은 연등천장이며 방은 반자를 하였고, 마루는 자귀질하여 만든 우물마루로 고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툇마루 청판은 오래된 고식기법으로 조선시대의 치목기법(治木技法)이 역력히 나타나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아울러, 건축 가구법이 축조 당시의 목조기술을 파악할 수 있어 건축 연구자료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